인권운동, 민주화운동, 평화통일운동, 약자의 편에서 한평생을 헌신하신 故 이희호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뜻’ 이어 가겠습니다.


양정자 /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 원장



이희호 선생님께서 6월 10일 97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시어 우리 곁을 떠나시었습니다.


선생님은 평생을 여성운동, 인권운동, 민주화운동, 평화통일운동, 인간문화운동을 펼치신 활동가인 동시에 약자를 위해 봉사하는 일에는 법률구조사업을 하고 있는 저희와 같은 길을 가는 동지셨으며, 저를 비롯한 수많은 후학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스승이셨습니다. 비록 선생님과 직접 한자리에 앉아 함께한 시간은 아주 적었지만, 선생님은 ‘이 땅에 민주화와 평화를 이루고, 정의를 실천하고, 약자의 편에 서서 봉사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선생님의 삶 전체를 통해 보여주시고 가르침을 주신 분으로 항상 마음속에 깊은 존경으로 모시던 큰 어른이셨습니다.


이희호 선생님과의 첫 만남은 제가 1964년 전국여성대회에 대학생 대표로 참석했을 때 이루어졌습니다. 저는 당시에 선생님이 어떤 분이신지, 어떤 일을 하시는지 전혀 알지 못했고, 단지 여성대회 참석자 중에서 지적이고 세련된 멋쟁이 세 분이 눈에 확 들어왔는데 그 중 한 분이 선생님이셨습니다. 그런데 그 멋쟁이 선생님이 제가 속한 분과의 사회를 맡으셔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연역적, 주입식 교육에 길들여진 저는 전국여성대회 분과의 사회를 맡으신 분은 강약이 들어간 음성으로, 자신이 생각하는바 메시지도 분원들에게 표현해주며 시원시원하게 진행하실 거라 생각했는데 선생님께선 아주 조용하고, 같은 톤의 음성으로 분원들의 의견만 전부 들으시고, 그 의견을 통합하시는 귀납적인 진행을 하시어 약간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멋은 있으신데 여성지도자로서 카리스마는 부족한 분이 우리 분과 사회를 맡으신 것 같아 일면 실망하면서 선생님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여성계의 지도자로서 존경을 받는 분으로 YWCA연합회 총무, 여성문제연구회 창설 멤버 등을 역임하신 분이라 했지만, 저는 지성을 겸비한 멋쟁이 분으로만 기억하다가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야 그 당시에 선생님께서 귀납적이고 민주적인 진행을 하시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상담위원으로 근무하면서 대법원 앞을 지나다가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명동성당에서 긴급조치 철폐, 민주인사 석방, 언론·출판·집회 등의 자유, 의회정치 회복, 사법권의 독립, 유신체제 퇴진을 요구)을 하신 민주인사들이 구속되자 석방하라는 데모를 하는 부인들 사이에 계신 선생님 뵙고,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초췌하고 강팍한 모습으로 변하신 모습에 너무 가슴 아프고 충격적이었습니다.


선생님은 故 김대중 대통령이 1998년 2월 25일 제15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 역대 대통령 부인들이 국민을 위해 좋은 일을 하겠다며 사업가들로부터 후원을 받고 그 결과가 좋지 않아 영부인은 청와대 안주인 역할이나 하고 조용히 지내라는 것이 국민들의 여론이니 일체 다른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주위 분들의 조언들을 뿌리치시고, IMF로 굶고 있는 아이들을 돕기 위한 단체 ‘사랑의 친구들’을 만드셨습니다. 미국에서도 한국가정법률상담소를 후원하던 방숙자, 유분자 회장님을 비롯한 어머니들이 ‘뜻’을 함께 하시어 미국에서 먼저 ‘나라사랑 어머니회’를 결성해서 2만불을 모아 ‘사랑의 친구들’에 보내 소외계층의 어린이들을 도우셨습니다.


선생님은 ‘배고픈 어린이가 없는 세상을 만들고자’하는 창설목적대로 단체가 잘 운영되도록 뒷받침 해주시고, 자체적으로 운영하도록 하시어 김대중 대통령 퇴임 후에도 재임시와 다름없이 ‘사랑의 친구들’은 다툼없이 그 목적을 현재까지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친구들’ 창설에 기초 역할을 했던 미국의 ‘나라사랑 어머니회’는 현재 ‘글로벌 어린이 재단’으로 명칭을 바꾸고 미 연방정부에 비영리단체로 등록하여, 세계 22개 지역에 지부를 두고,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 경제적·사회적 위협으로 생긴 세계 각처에 있는 불우한 어린이들의 구제, 복지, 교육 및 선도를 위해 일하는 단체로 발전했습니다. 선생님은 다른 사람들처럼 ‘내가 창설한 단체’, ‘한국 아이들’만 계속해서 도와주어야 한다 하지 않으시고, 우리 한국보다 더 어려운 지역의 아이들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높고, 크고, 넓은 메시지를 주셨기 때문에 그 ‘뜻’이 이어가며 넓혀지고 참여자들도 늘어가고 있습니다.


1999년 8월 26일에 창설된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은 목동 홍익병원 라석찬 이사장님과 그 부인이신 신정자 명예이사장님께서 홍익병원 별관 5층 전체를 무료로 임대해주시고 만 4년간을 관리비, 공과금등을 전부 부담해주시어 기반을 잡고, 5월말 현재 ‘고통받는 이웃’ 319,759명을 도왔습니다.

신정자 명예이사장님은 1966년 필자가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광주지부에 파견되어 일할 때 광주지부를 후원해 주시던 분입니다. 그분을 1999년 여성신문사 주최로 63빌딩에서 열린, 선생님께서 옥중에 계신 부군께 보낸 서신을 엮은 책의 출판기념회에서 아주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너무 반가워하시면서 가끔 TV 통해서 보았었는데 요즈음은 잘 안 나오던데 이태영 선생님이 돌아가시어 내부 책임이 더 많아져서 그러느냐 하시었습니다. 제가 3월에 상담소에서 퇴직했다하니 한참 더 일해야 하고, 이태영 선생님도 안 계시는데 후배들에게도 ‘뜻’을 전해주어야지 일을 그만 두어서 되겠는가 하시며 사무실을 무료로 임대해주시어 대한가정법률복지복지상담원 개원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선생님의 출판기념회가 개최되어, 필자가 그곳에 참석하여, 신정자 이사장님을 만나게 되어, 넓고 쾌적한 사무실을 내주시어 상담원이 문을 열 수 있었으니, 선생님은 전혀 모르시지만 결과적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법 앞에 만인평등이라는 이념을 실현하기 위하여 ‘고통받는 이웃과 함께’하며 ‘평등과 정의의 실현’을 위해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이들의 인권옹호를 위해 법률상담, 조력, 소송구조 등 모든 법률적 구조사업을 무료로 제공하여 법적인 해결 차원에서 도움을 줄 뿐 아니라 민주헌법정신에 맞게 법을 제정하고 개정하는 일, 법률 강연 및 교육, 홍보 등을 통해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 남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치료사업과 예방사업을 병행하여 국민의 법률복지에 이바지하여 평등과 정의가 공의처럼 흐르는 사회를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본원의 창설에 커다란 역할을 해주신 것입니다.


반편문화를 인간문화로,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평화주의 전술


여성부 신설, 여성할당제 신설 등에 영향을 주어 남자들이 역차별을 받게 되었다며 일부 남자들이 선생님을 비난합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가부장제 문화, 즉 반편문화를 인간문화로 변화시키어 남녀가 서로 존중받고 행복하게 살도록 하기 위해 일생을 헌신하신 것입니다.

상담원에 자원봉사를 나온 사법연수원의 한 남학생이 ‘성별에 따라 차별받지 않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대접받는 사회를 이루어야 남녀 모두 행복하고 세계적으로 국가경쟁정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원장님의 뜻에 동감한다. 그러나 선거에서 후보자 공천이나 공직사회·대학교수 등의 채용·진급에 있어서 여성계가 요구하는 할당제는 남녀 차별 없이 공정한 기준을 통해서 정당하게 결정해야하는 원칙을 무시하고 여자들에게만 일정한 비율을 보장해 달라는 것으로 ‘역차별’이라고 생각한다‘며 필자의 의견을 물어왔습니다.


필자가 그 남학생에게 ‘인간문화’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물었더니, 한마디로 답을 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인간을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물었더니 “나와 같은 종(種)을 인간이라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면 여자도 인간으로 생각하느냐 했더니 당연히 여자도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답했습니다.


그 답을 들은 필자는 그 남학생의 질문에 ‘교통사고가 나서 한쪽 다리를 다쳐 6개월 이상 깁스를 했다가 풀었다면 그 다리를 금방 아프지 않았을 때와 똑같이 사용할 수 없고, 얼마 동안은 다쳤던 다리에 물리치료 등 특별관리를 해야 그 다리를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건강한 다른 쪽 다리가 있어 그런대로 쓸 수 있는데 구태여 돈과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에 물리치료를 받지 않는다면 회복이 늦어 결국은 활동하는데 지장이 더 많아지고 원상회복되는데 시간만 더 걸릴 뿐이지 않겠느냐‘고 물었더니 그 남학생 역시 그럴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인간이라면 남녀는 한 몸에 있는 두 다리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는 반만년 이상 한 다리에만 법적·인습적·사회적으로 제어장치를 해왔으며 아직도 그 제어장치(법적인 차별조항·이중적 윤리·성역할 고정관념 등)를 완전히 제거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가부장제 문화, 즉 반편문화로 인해서 남자라는 한 다리에만 영양을 공급하고 운동을 시키고 활동하게 해왔습니다. 이제 우리가 두 다리를 균형 있게 사용하는 건강한 사회, 여자와 남자가 함께 살아가는 인간사회를 이루어가려면 지속적으로 가해진 제어장치로 인해 자유로운 활동을 제한받아온 한 다리가 다른 쪽 다리처럼 튼튼해질 때까지 특별히 영양을 공급하고 물리치료를 해서 건강한 다리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여성부 신설’, ‘여성할당제’는 ‘역차별’이 아니라 반만년 동안 꽁꽁 묶어 놓아 사용하지 못했던 내 몸의 한 다리에 사슬을 풀고 영양을 공급하고 물리치료를 하는 과정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같은 인간이라면 한 몸에 있는 양쪽 다리가 모두 건강해야만 건강한 사람으로서 자기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는 ‘여성부’, ‘여성할당제’가 남녀 모두와 국제경쟁력을 위해 필요합니다.


선생님이 평생에 걸쳐 실천한 “반편문화를 인간문화로 바꾸는 운동, 민주주의 실천, 평화통일운동, 약자를 위한 사랑과 봉사의 삶”을 백분의 1이라도 닮아보고자 노력하면서 우리 모두 선생님의 ‘뜻’ 이어가도록 힘을 합하겠습니다. 행동과 실천으로 모범을 보여주시고 용기를 주셨던 이희호 선생님의 영전에 뜨거운 감사와 깊은 존경의 인사를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