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는 세계적 흐름

형사정책연구원 보고서 발간

[ 2018-12-06 ]

 

공지영씨가 동료 소설가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혔다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할 처지에 놓인 가운데 우리나라도 세계 추세에 따라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국책 연구기관의 보고서가 나와 주목된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원장 한인섭)은 최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비범죄화 논의와 대안에 관한 연구(책임연구원 윤해성)' 보고서를 발간했다.

 

현행 형법 제3071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같은 법 제3091항은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신문, 잡지 또는 라디오 기타 출판물에 의하여 제3071항의 죄를 범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해 가중 처벌하고 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도 형법과 비슷하게 사실을 공공연히 적시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행위를 처벌하고 있다.

 

성폭행 사실 알리는 것만으로 가해자 명예훼손

 

이때문에 예컨대 성폭행 피해자 등은 자신이 가해자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리는 것만으로도 가해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처벌될 우려가 있다. 이때 처벌을 면하려면 진실한 내용이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는 점을 인정 받아야 한다. 성폭행 피해를 주위에 알려 보호를 받고 싶어도 피해 사실을 알리는 것만으로 일단 범죄구성요건에 해당될 가능성이 있어, '미투(#Me Too)' 운동 확산 과정에서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커지기도 했다.

 

윤해성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진실한 사실을 적시했는데 처벌하는 나라는 현재 전 세계에서 손가락에 꼽을 정도"라며 "2011321일 유엔인권위원회(UN Human Rights Committee)2015116UN 산하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위원회(ICCPR)에서는 우리나라에 관련 규정 폐지를 권고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사실 적시했는데 처벌하는 나라는 몇 곳 없어

 

윤 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미국, 독일, 일본 등 주요국의 명예훼손 법제도를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와 일본만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 규정을 두고 있다. 미국이나 독일은 처벌 규정을 두지 않고 대체로 민사적인 방법으로 규율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 사실 적시든 허위 사실 적시든 명예훼손 문제는 대부분 민사적인 방법에 따라 해결되고 있다. 일부 주에서 형사처벌 규정을 두고 있지만 실제 적용되는 사례는 거의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형사문제화되는 극소수의 경우에는 허위 사실 적시에 의한 것만 문제되고 진실한 사실 적시에 의한 것은 면책됐다. 독일에서도 명예훼손죄는 적시된 사실이 진실임을 입증하지 못하거나 허위인 경우에 성립된다. 진실한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는 명예훼손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유엔인권위 등서 한국에 관련 규정 폐지 권고

 

반면 일본은 우리나라처럼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를 두고 있다. 법정형도 비교적 높은 편이다. 그러나 공공성이 있는 경우 사실 여부를 판단해 진실하다는 점이 증명되면 처벌하지 않도록 위법성 조각사유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윤 연구위원은 "일본은 또 명예훼손죄를 친고죄로 규정해 공소가 제기되기 전에는 공공의 이해로 보아 범죄의 성립이 부정되고, 공소가 제기된 경우에 비로소 공공성과 사실 여부를 판단해 진실이면 처벌을 하지 않는 구조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이와 달리 반의사불벌죄로 규정하고 있다.

 

윤 연구위원은 "형법 제3071항은 공연히 진실한 사실을 적시하더라도 처벌될 수 있다는 점에서 소위 '허명'까지 보호하게 되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오늘날 세계적으로 명예훼손죄를 비범죄화하거나 최소한 비구금형으로 하고 있음은, 명예보호를 위해 형벌이외에 다른 수단 즉 손해배상이라는 민사적 제재가 보다 효과적임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의 폐지론이 전 세계적인 주류이고, 우리 형법상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가 법논리적 오류를 가지고 있는 이상 폐지 수순을 밝는 것은 당연지사"라며 "건전한 인터넷 문화와 함께 다른 부수적인 법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전제 하에, 장기적으로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타당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