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이상 억울한 사람. 약자를 돕는 법률구조기관을 뒤에서 소리없이 지원해 주신 은인

이관희 전 서남재단(오리온재단) 이사장님 영전에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 원장 / 양정자  


며칠 후면 어두운 세상을 밝히기 위해 이 땅에 빛으로 오신 평화의 사자 예수그리스도의 탄신일인 크리스마스입니다. 작년 12월 메시지에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위기적인 상황에 놓여 있는 남북관계가 소통과 화해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평화의 사자이신 예수님께서 역사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원드렸습니다.

 

그 기원이 하늘에 닿았는지 2018 동계평창올림픽에 남북한이 국가대표 단일팀을 구성해서 참석해 평화올림픽을 성공적 개최하고, 뒤이어 427일 판문점에서, 526일 통일각에서 남북한 정상회담을 개최해 북미정상회담 발판을 깔아주어 612일 싱가포르에서 북미정상회담 개최, 918일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해 한반도 비핵화, 남북 철도 연결을 공식화 하고 종전선언도 다룰 것이라고 밝히는 등 2018년 한반도 정세가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세계 평화를 향해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현재 세계의 분위기는 이념논쟁이나 적대보다는 평화를 통한 공존의 시대를 지향하고 있습니다.북한도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안팎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21세기 정보화시대의 도래 등은 남북한으로 하여금 더 이상 냉전의 잔재 위에 머무를 수 없게 하고 있습니다. 내외로 우리의 통일을 이루기 위해 이제까지 없었던 이런 호기회를 소모적인 논쟁으로 놓치는 우를 범한다면 우리는 후손에게 큰 죄인이 될 것입니다. 분단은 우리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남의 손에 의하여 되었지만 통일만은 우리의 손으로 이루어야 합니다.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 창설 시부터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해주신 이관희 평생회원님이 119일 소천 하셨습니다.

고 이관희 평생회원님은 1929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나 동양제과(오리온그룹) 창업주 고() 이양구 회장과 혼인하시고, 이 회장이 영면한 이후인 1989년 재단법인 오리온재단(서남재단)의 제 2대 이사장으로 취임, 이양구 회장의 유지를 이어 1990년대부터 최근까지 유아보육 및 장학 사업을 벌이며 기업의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데 앞장섰던 분입니다.

 

고 이관희 평생회원님을 처음 뵌 것은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법을 알지 못하고 돈이 없어 호소할 방법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무료로 도와주는 대한민국 최초의 법률구조기관, 인권기관인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창립 15주년 기념식에서였습니다. 상담소를 재정적으로 돕기 위해 1966년 구성된 10인클럽 회원으로, 백인회원으로, 이사로 상담소를 재정적으로 계속 지윈해 주시어 상담소 행사 때마다 그리고 이사회에서 자주 뵐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고 이관희 평생회원님은 필자가 1999년 한국가정법률상담소를 퇴직하고 같은 해 대한가정법률상담원이 창설되자 평생회원에 가입하시고 한 해도 빠지지 않고 특별후원금을 보내 주시고, 내담자가 데리고 온 아이들을 위해 오리온 과자를 보내주시고, 크리스마스에는 매년 손수 쓰신 카드를 보내주시며 격려를 해주시어, 그 격려에 힘입어 좌절하지 않고 힘든 가운데서 고통 받는 이웃을 위해 일을 계속 할 수 있게 해주신 분입니다. 이처럼 이사장님은 소외계층을 위한 인권기관이 지속될 수 있도록 50년 이상 한결같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분입니다.

고 이관희 이사장님을 만나 뵈면 응어리진 마음이 풀려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앞에 나서시지 않고 말수는 적으시지만 뒤에서 온화한 미소로 날선 토론장도 따뜻한 분위기기로 바꾸시는 대지와 같이 넓고 따뜻하고 모든 것을 포용하시는 겸손하고 품위 있는 우리시대의 큰 어른이셨습니다.

 

우리나라 법률구조사업의 숨은 공로자를 말할 때 고 이양구 회장님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고 이양구 회장님을 직접 만나 뵌 것은 딱 한번인데 이관희 이사장님 뵙기 전이였습니다.

 

고 이양구 회장님 1916함경남도 함주에서 태여나 1922년 아버지를 여읜 뒤 함흥으로 이사 하여 영신학교(永信學校)에 졸업 후 일본인이 경영하는 함흥물산에서 근무하다가 1938년 대양공사(大洋公司)를 설립하여 경영하였다. 1942년 함흥식량영단에 근무하였으며 1947년 단신 월남하여 서울에서 과자판매업을 시작, 동양식량공사를 설립하고 수입설탕·밀가루·제과용 원료판매로 전국적인 판매망을 구축하였다. 동양그룹 창업주인 이양구 회장님은 만 6살에 아버지를 여위고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면서 환경을 원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하나씩 자신의 목표를 이루어 가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198710월 서남장학재단을 설립하여 유아보육 및 장학 사업을 벌이며 기업의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데 앞장섰던 분입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창설자이신 고 이태영 박사님께서 상담소를 계속 운영할 수 있게 해주신 은인이시라며 항상 잊지 못하고 감사해 하는 이양구 사장님을 필자는 대학재학중 전국여성대회에 학생대표로 참가 했다가 오리온제과를 방문했을 때 당시 사장님이신 이양구 사장님께서 직접 나오시어 우렁찬 목소리로 시원시원하게 환영사를 해주시고 회사 안내를 해주실 때 회원들 틈에 섞여 뵙고 직접 뵌 적은 없습니다.

 

고 이태영소장님이 국가나 자치단체 어느 한사람 도움없이 무료 여성법률상담소를 개설해 10년간 운영하면서 너무 힘이 들어 이 일을 계속해야 할 것인가 하는 의문도 때때로 생겼고 과연 앞으로 얼마동안 지속될 것인가는 하는 문제로 자신이 없을 때 상담소 1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이양구 회장님이 1백만원을 주시어 -당시에는 그 돈 이자만 으로도 간사 월급 사무실비용도 한순간에 해결될 수 있는 액수- 상담소 사업을 계속 할 수 있었다(당시 이태영 소장님 이대여대 학장 월급이 6만원이 였다고 함). 그리고 상담소 건물 여성백인회관을 지을 때 세멘트를 이름도 밝히지 않고 밤에 공사장에 내려놓고 가서 후원 벽돌 한 장 한장이 그 시멘트로 옆으로 위로 단단히 붙고 쌓여 집으로 우뚝 서세되고, 내부 방기증자 중 가장 큰 방을 기증해 주시어 창립 20주년 때는 여성들의 뜻을 모은 집이 굳건히 서게 하여 주시어 그의 뜻과 도움으로 상담소의 역사의 끈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상담소의 은인으로 그 뜻이 내일에 606백년 천년을 있게 할 것이다며 감사해 하셨습니다.    

 

그분의 자손과 우리 후배들이 고 이양구 · 이관희 이사장님의 고귀하고 높으신 뜻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만이 두분이 심어주고 베풀어주신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아울러 온가족에게 행복이 가득하기를 받은바 축복을 부모님처럼 어려운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지도자의 삶을 살아가기를 기도하면서 이글은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