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관계 파탄상태서 부자관계 단절되고 혈연관계 없다면

'친생자관계부존재 확인의 소' 제기 가능

[서울가정법원항소심: 2018-11-15. 201831218, 201831287 ]

 

부부의 혼인기간 중 출생해 남편()의 친생자로 추정받는 경우라도 혼인관계가 이미 파탄나고 남편과 자녀 사이의 관계가 단절됐을 뿐만 아니라 유전자 검사 등으로 혈연관계가 없음이 명확한 때에는 '친생자관계부존재 확인의 소'를 통해 부자관계를 단절시킬 수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판례는 '아내가 혼인 중에 임신한 자녀는 남편의 자녀로 추정한다'고 규정한 민법 제8441항에 따라 강력한 친생자 추정을 받는 경우에는 아내가 남편의 아이를 임신할 수 없다는 사유가 외관상 명백하게 드러난 때를 제외하고는 친생 추정을 받는다고 판단해 제척기간 등 요건이 엄격한 '친생부인의 소'에 의해서만 친자관계를 부인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이번 판결은 '외관상 명백한 사유'가 없어도 특정요건을 충족하면 친생추정이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해 친생자관계부존재 확인의 소로도 부자관계를 해소할 수 있도록 했다는 데 특징이 있다. 유전자 검사 등으로 간단히 친자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등 시대적 변화를 고려해 친생자 추정 규정도 탄력적으로 해석·적용해야 한다는 뜻이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서울가정법원 가사2(재판장 김성우 부장판사)는 최근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소송 2건의 항소심(201831218, 201831287)에서 기존 대법원 판결과 같은 법리로 각하 판결한 1심을 취소하고 "친생자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원고승소 판결했다.

 

A()씨와 B()씨는 1993년 결혼해 1997년 자녀 C를 출산하고 친자로 출생신고를 했다. 이후 2001년 두 사람은 협의이혼했고, 친권자로 지정된 A씨가 줄곧 자녀를 양육했다. 그런데 2002D()씨가 CE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친생자로 출생신고를 해 C의 가족관계등록부가 이중으로 편제됐다. C는 이중으로 출생신고가 된 이후 대내외적으로 E라는 이름으로 생활했고 B씨와는 교류가 전혀 없었다. 이에 C의 어머니 A씨는 전 남편인 B씨와 자녀 사이에 친생자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인을 구하는 소송을 냈다.

 

F()H()19964월 혼인신고했다. H씨는 이듬해 자녀 G를 낳았고, G는 두 사람의 친생자로 출생신고됐다. 그런데 남편 F씨가 유전자형 검사를 해보니 G는 자신의 친자가 아니었다. F씨는 H씨와 이혼하고 서로 교류없이 지내다 2004I씨와 재혼했다. G2008년 성과 본을 변경했다. 이후 F씨의 배우자인 I씨는 남편 F씨와 G사이에 친생자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인을 구하는 소송을 냈다.

DNA검사 등으로 간단히 친생여부 확인 할 수 있어

 

재판부는 "친생자 추정 및 친생부인의 소에 관한 규정은 1958년 구 민법 제정 당시부터 도입된 것으로 이는 부성(父性)의 정확한 감별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고 처의 부정행위가 드물었던 시대적 배경 하에서 불확실한 개연성에 기반을 둔 것인데, 과학적 친자감정기술의 발달로 혈액형, 유전자형의 배치에 대한 감정을 통해 친생자 추정이 혈연에 반하는지 여부를 명확히 판결할 수 있는 현재에도 이러한 친생자 추정의 법리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밝혔다.

 

이어 "혈액형 또는 유전자형 배치 등 검사는 비교적 간단해 부부의 내밀한 사적 비밀을 침해하지 않고도 혈연관계 유무의 확인이 용이할 뿐 아니라 결과의 객관성과 신뢰성이 매우 높다""이미 혼인관계가 파탄됐고 부와 자 사이의 유대관계도 단절되었을 뿐 아니라, 부자간 혈연관계도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도 친생부인의 소의 제척기간 도과를 이유로 혈연진실주의에 부합하게 가족관계등록부 등을 수정할 수 있는 방법을 차단하는 것은 이를 통해 지켜야 할 별다른 법익은 존재하지 않는 반면 이로 인해 진실한 혈연관계에 부합하는 법적인 부자관계의 정립을 원하는 사람에게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판시했다.

 

제척기간 등 엄격한 '친생부인의 소' 제기는 불합리

 

앞서 1심은 대법원 판례의 법리에 따라 친생자 추정을 받는 경우에는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해야 한다며 두 사건에 대해 모두 각하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지난 1968"친생자의 추정을 받는 경우 이를 부인하려면 민법 제847조에 따라 '친생부인의 소'의 확정판결을 받아야 한다""부부가 사실상 이혼해 여러 해 동안 별거생활을 하던 중 아이를 포태한 경우에도 (이 같은) 추정은 번복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서울가정법원 항소심서 1심 취소

원고 승소 판결

 

그러다 1983년 전원합의체 판결(8259)을 통해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서는 친생자 추정을 배제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대법원은 당시 전합 판결에서 "민법 제844조는 부부가 동거해 처가 부()의 자를 포태할 수 있는 상태에서 자()를 포태한 경우에 적용되는 것으로, 한쪽이 장기간에 걸쳐 해외에 나가있거나 사실상의 이혼으로 별거하고 있는 등 동서(同棲)의 결여로 처가 부의 자를 포태할 수 없는 것이 외관상 명백한 사정이 있다면 추정이 미치지 않는다"고 판시해 종래 판례를 변경한 뒤 이 같은 입장을 유지해왔다.

 

법원 관계자는 "이번 서울가정법원 판결은 처가 부의 자를 포태할 수 없는 외관상 명백한 사정이 없더라도 이미 혼인관계가 파탄에 이르렀고 부자간 사회적·정서적 유대관계가 단절됐으며 유전자검사 등을 통해 친생자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경우 친생자 추정의 효력이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해 친생자 추정이 배제되는 예외사유를 보다 넓게 인정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