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용금지한 예규는 부모의 작명권 침해"

[서울동부지법: 2015-07-24 ]

 

자녀의 이름에 한자와 한글을 같이 쓸 수 있다는 법원 결정이 나왔다. 대법원이 만든 가족관계등록예규 제109호는 '이름에 한글과 한자를 혼합해 사용한 출생신고 등은 수리해서는 안 된다'고 정하고 있으나, 법원은 이 같은 예규가 부모의 작명권을 과도하고 침해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변호사인 한모(42)씨는 2013년 8월 출생한 딸의 이름을 자신의 성인 한(韓)씨와 아내의 성인 이(李)씨를 함께 병기한 뒤 '새봄'이라는 한글이름을 붙였다. 한씨는 출생신고서 성명 중 한글란에는 '한이새봄'으로, 한자란에는 '韓李새봄'으로 작성해 동사무소에 제출했다. 하지만 동사무소는 2주 뒤 "한자로 표기한 성명 중 이름에 해당하는 '李새봄'이 '이름에 한글과 한자를 혼합해 사용해선 안 된다'라는 가족관계등록 예규와 맞지 않는다"며 출생신고를 반려했다. 한씨는 같은해 11월 서울동부지법에 "예규가 헌법이 보장하는 작명권을 법률이 아닌 방식으로 제한하고 있다"며 신청을 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항고했다.

 

서울동부지법 민사12부(재판장 조건주 부장판사)는 최근 한씨가 "딸의 이름에 한자와 한글을 같이 사용했다는 이유로 출생신고를 반려한 것은 부당하다"며 낸 가족관계등록공무원의 처분에 대한 불복신청 항고사건(2013브17)에서 한씨의 신청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이름에 한자와 한글을 혼용하지 못하게 하는 가족관계등록예규의 취지는 성(姓)이 무엇인지 혼동할 여지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으로 보인다"면서 "그러나 성은 원칙적으로 부의 성을 따르게 돼 있고, 이름에 한글과 한자를 혼용하더라도 일반인들이 성이 무엇인지 혼동할 여지는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가족관계등록법이 한글 또는 한자를 사용해 이름을 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음에도 한글만으로 또는 한자만으로 이름을 짓도록 강제하고 있는 가족관계등록예규는 합리적인 범위를 넘어 작명권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있어 효력이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