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검사 불응해도 정황 있으면 친자인정”

유전자 감정 거부한 父에 친자관계 인정 판결

[서울가정법원: 2010-06-20]

 

친딸이라고 볼 만한 정황이 있는데도 아버지가 이를 부인하면서 유전자 감정에 응하지 않자 법원이 따로 감정 절차 없이 부녀관계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서울가정법원 가사5단독 이현곤 판사는 A(55·여)씨가 자신을 법적 딸로 인정해 달라면서 B(82)씨를 상대로 낸 인지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판결했다고 20일 밝혔다.

 

서로 교제하는 과정에서 출산한 사실이 인정되는 등 친자관계를 인정할 만한 정황이 있음에도 아무런 이유없이 무조건 유전자 감정에 응하지 않을 경우 법률상 친자관계를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피고가 친자관계를 부인하려면 유전자 검사에 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가정법원 가사5단독 이현곤 판사는 50대 여성 A(55)씨가 80대 남성 B(82)씨를 상대로 낸 인지소송에서 “피고는 원고를 친생자로 인지한다”며 원고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고 A씨의 모친이 피고 B씨와 서로 교제하는 과정에서 A씨를 출산했고 A씨의 이름도 B씨가 직접 지어줬으며, A씨가 성장해 결혼한 후에도 B씨가 A씨 남편의 사업을 도와주기도 했다”며 “이같은 정황이 있음에도 피고가 이를 부인하기만 할 뿐 유전자검사 요구에도 계속해서 응하지 않는 등의 사정을 종합해 보면 원고와 피고 사이에 친자관계가 있고 피고 역시 사실상 이를 인정해왔음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A씨가 지난 50여년간 인지청구를 하지 않다가 이제와 소를 제기하는 것은 소권남용에 해당한다는 B씨의 주장에 대해서도 “인지청구권은 포기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며, 원고가 단순히 이를 그동안 행사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이를 포기했다고 단정지을 수도 없으며 원고의 청구가 소권남용에 해당한다고 볼만한 사정도 없다”고 판단했다.

 

A씨의 모친은 지난 52년 음식점에서 일하다 지인의 소개로 B씨를 알게돼 교제하던 중 A씨를 임신했다. B씨는 A씨의 이름까지 지어주며 교제를 계속했지만 이후 연락을 끊었고, A씨의 어머니는 혼자 A씨를 출산해 양육했다. 이후 A씨는 17살 되던 해 아버지 B씨를 다시 만났고 결혼 후에도 남편과 함께 B씨를 찾아가 인사하기도 했다. B씨는 A씨의 남편이 자신의 회사에 자재를 납품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지속적으로 도움을 주기도 했다. A씨는 지난해 B씨를 상대로 자신을 딸로 인지해 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