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효중단만을 목적으로 하는 확인소송도 가능"

(대법: 2018-10-18. 2015232316)

 

"복잡한 이행소송 문제 해결 위해 필요"'76' 의견으로 판결

종전 이행소송 외 간이한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 허용

 

채권 소멸시효의 중단만을 목적으로 하는 확인소송도 가능하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기존에는 소송당사자가 소멸시효 중단을 위한 후소를 제기하기 위해서는 '이행소송' 방식으로만 청구가 가능했다. 이 경우 채권자가 시효중단만을 원하더라도 후소에서도 청구권의 존부와 범위에 대해 다시 심리를 받아야 해 번거롭고 불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그러나 이번 판결에 따라 후소를 확인소송으로 진행하면 이같은 중복심리를 할 필요가 없어지게 돼 신속하게 절차가 진행될 수 있을 전망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이기택 대법관)18일 원모씨가 "빌려간 16000만원을 갚으라"며 남모씨를 낸 소멸시효 연장을 위한 대여금반환청구소송(2015232316)에서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원씨는 2003년 남씨를 상대로 16000만원의 대여금 청구 소송을 내 2004년 승소 확정 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확정 판결 이후에도 남씨가 돈을 갚지 않자 원씨는 201411월 소멸시효가 완성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남씨를 상대로 다시 16000만원 및 지연손해금 지급을 청구하는 소송(후소)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남씨는 재판과정에서 "2013년 파산절차에서 면책결정이 확정됐으므로 원씨에 대한 채권도 면책됐다"고 맞섰다.

 

1,2심은 "남씨가 원씨에 대한 판결금 채권을 알고 있었음에도 채권자 목록에 기재하지 않았으므로,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5667호에서 정한 '채무자가 악의로 채권자목록에 기재하지 아니한 청구권'에 해당돼 책임이 면제되지 않는다"면서 남씨에게 빚을 갚으라고 판결했다.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따로 판단하지 않았다.

 

대법원도 원씨의 손을 들어준 원심의 결론은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종전에 허용되던 이행소송 외에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도 허용할 것인지 아닌지를 면밀히 살펴보기 위해 사건을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직권으로 소멸시효 중단을 위한 후소의 형태를 심리한 것이다. 원고승소라는 결론에는 전원합의체 구성원 전원이 동의했지만,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을 인정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76으로 의견이 갈렸다. 다수결에 따라 결정되는 전원합의체 원칙상 다수의견을 낸 김명수 대법원장 등 7명의 의견이 대법원의 최종 결론이 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대법원은 그동안 '확정된 승소판결에는 기판력이 있으므로, 승소 확정판결을 받은 당사자가 그 상대방을 상대로 다시 승소 확정판결의 전소(前訴)와 동일한 청구의 소를 제기하는 경우 그 후소(後訴)는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어 부적법하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확정판결에 의한 채권의 소멸시효기간인 10년의 경과가 임박한 경우에는 그 시효중단을 위한 소는 소의 이익이 있다'는 입장을 취해왔다"면서 "그런데 이와같은 시효중단을 위한 후소로서 '이행소송'만을 인정한 결과, 후소 변론종결시를 기준으로 청구권의 존부와 범위를 새로 심사해야해 불필요한 심리가 이뤄지게 됐다. 채권자는 시효중단만을 원할 뿐인데 청구권의 실체적 존부와 범위까지 다시 심리하게 되면서 사법자원이 낭비될뿐만 아니라 후소에서 집행권원이 추가로 발생해 이중집행의 위험이 높아지고, '소멸시효기간인 10년의 경과가 임박한 시점'이라는 모호한 기준에 의해 후소의 적법 여부가 좌우되는 등 여러 문제점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러한 '이행소송'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새로운 방식은 전소 판결로 확정된 채권의 시효를 중단시키기 위한 조치, '재판상의 청구'가 있다는 점에 대해서만 확인을 구하는 형태"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채권자는 이같은 두 가지 형태의 소송 중 자신의 상황과 필요에 보다 적합한 것을 선택해 제기하면 된다"고 했다.

 

재판부는 또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에서는 전소와 달리 후소의 소송물은 '실체법상 구체적 청구권의 존부'가 아니다"라며 "또 후소 판결은 '시효를 중단시키기 위한 재판상 청구가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만 효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소멸시효 완성 등을 포함한 청구권의 존부 및 범위와 같은 실체적 법률관계에 관한 심리를 할 필요가 없고, 채권자는 청구원인으로 전소 판결이 확정되었다는 점과 그 청구권의 시효중단을 위해 후소가 제기되었다는 점만 주장하고 전소 판결의 사본과 확정증명서 등으로 이를 증명하면 되며 법원도 이 점만 심리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채권자는 전소 판결이 확정되고 적당한 시점에 이와 같은 후소를 제기할 수 있고, 그 시기에 관해 판결이 확정된 청구권의 소멸시효기간인 10년의 경과가 임박할 것을 요하지 않는다"면서 "이처럼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에 의하면 '이행소송'의 문제점이 모두 해결된다"고 했다.

 

한편 이같은 다수의견에 대해 권순일·박정화·김선수·이동원·노정희 등 5명의 대법관은 "이행소송을 허용하는 현재의 실무에 문제가 많다고 보이지 않고,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은 구체적인 권리의무에 관한 분쟁이 아니라 '시효중단을 위한 재판상 청구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어서 '소송'이라고 보기 어렵고, 확인소송으로서의 '확인의 이익'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이같은 방식의 확인소송은 허용될 수 없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또 김재형 대법관은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은 입법을 통해서만 받아들일 수 있다""이행소송 외에 현행법의 해석으로 다른 형태의 소송을 허용한다면, 전소 판결로 확정된 채권 그 자체를 확인의 대상으로 삼는 '청구권 확인소송'만 가능하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기존 이행소송 외에 보다 간이한 방식의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도 허용된다고 함으로써 여러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는데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