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생활 파탄자 이혼청구 허용… 논란 일듯
[ 광주고법: 2009-06-08 ]

기존 판례와 달리 결혼생활 파탄책임자가 제기한 이혼소송이 하급심에서 받아들여져 향후 대법원 판단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광주고법 제1가사부(선재성 부장판사)는 8일 A씨(42·여)가 남편 B씨(46)를 상대로 낸 이혼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유책 배우자의 청구’라는 이유 등으로 이혼을 불허한 1심 판결을 깨고 이혼을 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A씨는 가정불화로 11년간 남편과 별거생활을 하면서 다른 남자와의 사이에서 장애아를 출산, 명백한 ‘유책 배우자’로 간주됐지만 재판부는 혼인보다 이혼이 합리적인 것으로 판단해 A씨 청구를 받아들였다.

A씨 부부는 1990년 12월 혼인신고 후 2명의 자녀를 낳았지만 남편의 음주와 외박 등으로 불화가 생겼고 A씨는 97년 가출한 이후 남편과 대부분 따로 살아왔다. 그러다 A씨는 다른 남자와 동거해 지난해 2월 아이를 낳았고, 기존 두 자녀(중·고생)는 남편이 키우는 상황이 됐다.

재판부는 “동거기간보다 별거기간이 길고, 부부간에 어린 자녀가 없다면 이혼한다고 해서 상대방이나 자녀가 힘든 상태에 처하지 않는 등 사회정의에 반하지 않는다”며 A씨와 B씨의 이혼을 허락했다. 다만 A씨는 두 자녀를 키우는 남편에게 40만∼60만원의 양육비를 줘야 한다고 판시했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배우자 한쪽에 중대한 책임이 있을 때 책임이 없는 배우자가 청구한 이혼만을 인정하는 ‘유책주의’를 따르고 있어 ‘유책 배우자’가 청구한 이혼은 받아들이지 않아 왔다. 이는 가정의 해체를 막아 미성년자인 자녀를 보호하고, 가부장적 사회에서 남성이 이혼을 빌미로 여성을 가정에서 쫓아내는 경우를 방지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러나 1907년 스위스 옛 민법이 ‘부부간 혼인생활이 지속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파탄된 경우 한쪽은 이혼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규정하기 시작하면서 각국의 입법례는 유책주의에서 ‘파탄주의’로 옮겨가는 추세로 바뀌고 있다. 혼인생활이 회복할 수 없을 만큼 파탄됐다면 이혼을 청구하는 배우자의 책임 유무와 상관없이 결혼생활을 정리하는 편이 효율적이라는 게 파탄주의의 취지다.

국내에서도 여성지위가 향상되면서 여성이 오히려 이혼 청구를 많이 하는 현실을 반영해 유책주의에서 파탄주의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법조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이번 광주고법 판결은 이 같은 파탄주의를 처음 적용했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선 부장판사는 “유책 배우자라는 이유로 이혼 가능성을 원칙적으로 차단한다면 배우자로서의 지위와 의무 이행을 국가가 강제하는 것이 돼 인간 존엄과 가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침해되는 셈”이라며 “부부관계 유지가 필요한 경우 외에는 혼인생활이 파탄났다면 유책 배우자의 이혼청구도 허용하는 것이 옳다”고 밝혔다.

그는 또 “유책주의의 예외 범위를 넓히거나 파탄주의로 옮겨가는 것에 대한 이론적 시도는 있었지만 실제적 판결로 접근하는 사례는 충분하지 않았다”며 “이번 판결이 어느 쪽이 실정에 맞는 것인지 공론화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