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죄 인정,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여부로 판단  
피해자가 명시적 거부의사 밝혔음에도 성관계 계속하면 해당  


법원이 강간죄를 인정하는 범위가 완화되고 있다.

예전의 ‘저항이 불가능할 정도로 폭행·협박의 있었던 때’나 ‘주위 사람들에게 구원을 요청할 수 없었을 때’ 강간죄를 인정하던 것에서 점차 폭행·협박의 정도가 완화되는 추세다.

‘폭행’을 강조하던 측면에서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는지 여부로 변화되는 것으로 풀인된다. 피해자가 명시적으로 거부의사를 밝혔음에도 성관계를 계속했다면 이는 강간죄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다만 ‘거부의사’를 밝혔다고 했을 때 ‘거부의사’를 밝힐만한 명확한 정황이 있었는지를 입증해야 해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다면 입증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최성준 부장판사는 “요즘은 거부의사를 명확히 하고, 거부의사를 인정할만한 명확한 정황이 있다면 이는 강간으로 보고있어 사실관계의 입증이 문제가 된다”며 “반항의 정도에 따라 강간이 성립하고 안하는 것이 아니고 상황에 따라 다르게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 부장판사는 이어 “일반 사람들의 성의 개념에 따라 폭행·협박의 정도도 변천해 가는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상대방의 반응 등을 생각해 판단할 것이지 천편일률적인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성기의 삽입이 아닌 구강성교 등을 강간에 준해 처벌하기도 했다. 현행법상 성기의 삽입이 없으면 강간죄로 처벌할 수 없다.

지난 1월 서울중앙지법 형사26부(재판장 한범수 부장판사)는 여성고객의 집에 들어가 강도·강간미수를 저지른 혐의로 구속기소된 경비업체 전 직원 노모씨에게 징역7년을 선고했다(2007고합1065).

노씨는 집에 침입해 현금을 빼앗고 강제로 두 여성을 성추행했으나 콘돔이 없자 신원이 드러날 것을 우려해 ‘강간’은 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비록 강간행위는 없었으나 그 추행의 정도가 강간행위에 비견될 정도로 매우 중하다”며 “피고인에 대해 미수감경은 하지 않는다”고 양형이유를 밝힌 바 있다.

앞서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서기석 부장판사)는 2006년11월 연인사이에서의 ‘데이트 강간’에 대해 징역1년6월에 집행유예3년을 선고했다(2006노711).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몸이 아픈 피해자가 명시적으로 거절의사를 표시했음에도 반항을 억압한 후 강제로 성관계를 가졌다”며 “피해자가 주위 사람들에게 구원을 요청할 수 있었다거나 사력을 다해 반항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강간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서 부장판사는 “강간죄 성립에 필요한 폭행·협박의 정도를 완화 해석해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보호가치를 확고히 하고 성폭력 피해자들을 보호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있다. 현행법상 성폭력범죄는 친고죄이고 부부강간이나 남성의 피해는 인정되지 않는다. 또 거부의사를 밝혔다고 해도 이를 인정할 만한 정황이 없다면 입증이 어렵다.

지난해 2월부터 추진된 강간의 구성요건 완화와 강간대상의 확대 등의 내용을 담은 성폭력에 관한 형법개정안은 현재까지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